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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D.Yoon

[KEYASSIST] [윤송이박사] MIT, Midea Lab

지식 연주가 Knowledge Designer 2007.11.10 01:57

MIT, Midea Lab
,  
자유가 시작되는 곳
- 기술과 예술의 조화 -
                                              <원문출처-월간미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윤 송 이  (Ph.D 컴퓨터 신경과학 정공, 한국메킨지사 경영컨설턴트)

미디어 랩 (Media Lab)의 존 마에다 (John Maeda) 교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중에
일본의 '미야다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고대 일본에서 절을 짓는 목수들을 미야다쿠라
불렀고, 이들이 지은 절이 천 년간 그대로 보존이 되면 천황은 그 절을 지은 미야다쿠에게
특별한 영예를 허락했다고 한다. 마에다 교수님은 미야다쿠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떻게
그렇게 오래가는 절을 지을 수 있었냐'고 묻자 그들은 "재료에 대한 충분한 이해만이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었다"고 했다며
,
창작 활동에서 사용하는 재료와 도구에 대한
숙지를 강조하곤 했다. / 기술과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

니시오카라는 미야다쿠는 오래가는 절은 설계가 잘 되어야 하지만, 목수 자신이 나무를
고르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여 남쪽 벽을 지을 때는 산 남쪽에서 자란 나무를 쓰고,
서쪽 벽을 지을 때는 산 서쪽에서 자란 나무를 쓰는 식으로 하여 건물의 각 부분에
최적의 나무를 쓰는 노력을 들여야 함을 강조했다고 한다.

내 호기심과 열정을 머무르게 했던 것은 '컴퓨터-휴먼 인터랙션 (computer-human interaction)'을 구현하는 분야였고, 결함 없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통찰력과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였다.
인터랙티브 작품(interactive art piece) 을 완성하려면 엔지니어와 예술가가 한 팀을
이루어 일을 하든지, 시스템을 구현하는 한 사람이 두 분야에 대한 이해를 모두
갖추어야 했다.

일을 시작할 때, 처음 배운 것은 엔지니어로서 비주얼 아트(Visual Art)나 인터랙티브
음악 작곡 (Interactive Music Composition) 의 배경지식을 가진 예술가들과 한 팀이 되어
일을 진행하는 것이었으며, 첫 프로젝트는 그 소요기간의 3분의 2 이상을 그들과 의사소통
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썼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구현한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을
좀더 호소력 있는 방법으로 사용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시각예술을 전공한
친구들이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포함한 엔지니어와,
자신들의 뛰어난 상상력으로 생각해 낸 것을 전달하기 위한 하드웨어를
제공하는 것이 엔지니어의 역할이 라고 생각했던예술가 그룹의 일이
원만히 진행될 리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한 보 한 보가 고통스러운 토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일이 급작스럽고도 즐겁게 진전되기 시작했다. 이는 상대를 예술을 전공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친구가 아니라 다 같은 팀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뒤부터였던 것 같다. 힘든 시간 끝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학습이 상대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져왔고, 따라서 서로의 고민에 진정으로 동참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예술과 기술의 갈등을 극복해야

상호작용성 (interactivity) 은 비단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화두로서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되고 이야기되고 있으며, 사용자가 창작의 일부로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을
구현한다는 것은 표현의 새 지평을 여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종종 서로 다른 두 분야가 결합되는 데서 오는 충돌과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이 창작
활동의 포기라는 결과, 혹은 주어진 하드웨어에 표현의 자유를 제한시키고 마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이러한 예술과 기술의 갈등, 특히 기술의 한계에 의해 표현이 좌절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류 발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예술가들은 특유의 개념을 초월하는 사고로
새로운 필요와 응용 형태를 창조해 왔으며, 그러한 리드가 기술 발전을 주도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례로 제프리 쇼 (Jeffery Shaw)의 〈Legible City〉로 명명된 VR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그가 1988년 자전거를 타는 사용자가 볼 수 있는 가상현실의 건물을 제안했을 때,
그러한 구조는 단지 스크린 위의 글자로만 나타낼 수 있었으나, 지금 미국의 카네기 멜론 대학
(Carnegie Mellon University) 에서는 자전거 타기 가상현실 장치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아이들이 자전거 안전 수칙을 배우는 데 활용하고 있다. 기술이 예술가의 상상력에 뒤이어 발전한
예다.


물론 이와 반대인 경우도 있어,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은 가상의 예술가이며, 경험하고 느껴
보지 못했던 가상의 세계라는 개념, 그리고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를 통한 느낌을 예술로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을 예술가들에게 준 것도 사실이다.

진정한 의미의 인터랙티브 아트 혹은 넓은 의미의 컴퓨터 아트라는 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
보다 마에다 교수님의 교훈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창작은 사용하는 재료를
충분히 숙지했을 때만 나올 수 있고, 이것이 표현욕이 되었든 복잡한 하드웨어가 되었든
모두가 창작활동의 재료로서 익힘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데는 차이가 없다.

다만, 이 둘은 기존 교육 시스템이나 인식에서는 서로 다른 훈련(discipline)으로 인식되어
모두를 공부할 기회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둘을 모두 익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둘을 모두 공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표현 폭의 확장, 새로운
체험의 제시 등의 시너지 효과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매력적인 동기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제 서로의 분야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부단한 노력, 마음자세, 더 나아가
이 둘을 아우르는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등의 일을 추진하는 것이 표현의 확장
이라는 꿈을 지닌 우리가 해결해야 할 선수 과제로 남았다.



* 윤송이(26)는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 (KAIST)을 3년 6개월 만에 
  졸업한 후, 미국 MIT에서 컴퓨터 신경과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캐릭터가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간다는 내용의 논문으로 세계 최대의 컴퓨터관련
  협회인 ACM(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이 주최한 학회 'Agent 2000'에서 1년에
  한 명에게 주는 '최우수 학생 논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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