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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발전모양과 혁신에 대하여 본문

Ph.D Course/Thinkings

저널리즘의 발전모양과 혁신에 대하여

지식 연주가 Knowledge Designer 2016.03.11 17:38

아래의 기사를 읽고 저널리즘의 혁신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기술한 글입니다. 독서모임 트레바리에서 논의된 내용을 추가하여 보완했습니다. 현재의 저널리즘의 발전모양은 혁신인지,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부족한 점은 언제든 의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he Great Journalism Innovation Problem"

https://medium.com/@fieldproducer/the-great-journalism-innovation-problem-ac7ba41cb77c#.7vamc0srk

 

1. 현재의 저널리즘의 발전모양은 혁신인가?

혁신은 현재 저널리즘의 화두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저널리즘의 기조 안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키려 하며, 새로운 모양의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혁신이라고 부를만한 성질의 것이 맞는걸까? 뉴욕타임즈처럼 뉴스룸을 바꾸고, 디지털 기반의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과연 혁신일까. 새로운 경쟁동력이 되거나 파괴적 형태의 영향력을 자아낼 수 있을만한 것일지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혁신이라는 단어가 이미 많이 사용되어 내재화되었다. 혁신이 그런 것이 아니라, 단어가 주는 영향력이 그런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혁신은 기존의 컨텐츠를 기반으로 강점을 강화하는 방향의 성질이었다. 우리네 환경에서 저널리즘을 바꾸어내는 행위(혁신이라고 일컬어지는)가 그런 목적성을 띄고 하는 것인가. 너도 나도 하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그런 형태의 팔로업이 아닌가 생각한다. 구글뉴스랩과 블로터가 최근 개최한 넥스트저널리즘스쿨을 보며 어떤 이는 혁신적 시도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비관적이다. 저널리즘에 대한 깊은 존폐의 고민 없이 형태를 바꾸고, 시각화와 인터랙티브 형태의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술을 더한 것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2. 저널리즘은 지금의 모양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저널리즘은 지금의 모양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의 고민과 변혁적 생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의 저널리즘을 주창하면서 사고의 틀을 과거의 형태에 머물러있다. 정확히 말하면, ‘신문과 방송그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저널리즘은 매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과 컨셉 그 자체이다. 현재의 발전모양으로 본다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혁신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저널리즘이 바뀌려면 그를 둘러싼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이것은 조직의 형태, 그리고 구성원의 변혁을 전제로 한다. 환경과 규율이 변해야 생각이 바뀌고 방법이 따라온다. 편집국을 위시한 신문사, 보도국 중심의 방송사 이러한 조직구조가 있는한 저널리즘의 행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기자만이 글과 말을 할 수 있고,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철저하게 지원형태의 모양을 취해야 하는 모양에서, 빠르고 생생하며, 변혁을 이루어내는 컨텐츠가 나올리 만무하다. 데이터 저널리즘도 마찬가지다. 기자가 기술을 배우거나, 기술을 가진 사람을 기사작성에 중심에 넣지 않는 한 컨텐츠의 깊이와 속도를 담보할 수 없다.

 

3. 문샷씽킹과 테슬라의 혁신

실리콘밸리에서 한때, 그리고 지금도 유행하는 단어가 있다. 문샷씽킹이다. 적은 개선이 아니라 거대한 형태의 변혁을 목표로 함으로서, 의미있는 혁신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마인드, 생각이다. 테슬라가 대표적인 사례다. 거대한 규모의 변화를 지향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러저런 시도를 하여 결국은 혁신을 이뤄낸다. 실패를 해도 변화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성공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 국내의 저널리즘 관련 조직, 기업들이 실패를 권장하며, 기술적인 시도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을까. 혁신이라는 것은 숫자(구독률, 시청률 등)가 목표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 자체에 목적을 둘 때 이뤄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까. 데이터 저널리즘이든, 데이터 시각화든 간에 새로운 모양의 시도에 관용적이고 이를 정량적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양손잡이 형태로 바라볼 수 있을때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4. 저널리즘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저널리즘 분야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 버즈피드이다. 컨텐츠의 생산목적을 확산성에 두고, 이를 위한 분석을 통해 이것을 달성한다. 혁신적인 시도이다. 그러나, 모두가 버즈피드 같은 혁신적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역량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강점 기반에서 판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시도를 해야 한다. 저널리즘이라는 틀 안에서의 사고가 오히려 혁신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이를 통한 비용을 받는 모양의 틀 말이다. 앞으로의 저널리즘의 형태는 마이크로서비스일까. 플랫폼일까. 아니면 새로운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는 가치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비용구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비스 측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저널리즘이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이라는 모양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의 형태와 질은 우수한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독자의 욕구를 채울 방법은 무엇인가.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저널리즘 안에서의 혁신을 논할 때가 아니다.

 

5. 혁신이 성공하고 유지될 수 있는 구조

혁신은 어느 순간의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유지되어 의미있는 문화로 자리잡아야 성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기술 요소가 아니라 조직적인 관점에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저널리즘을 둘러싼 권력구도가 어떻게 되어있느냐가 중요하다.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이들이 저널리즘의 중심에서 기능할 수 있을지가 혁신적인 시도의 장기적 유지의 관건이 아닐까. 그것이 아니라면 기존의 저널리즘 종사자들이 기술적 시도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저널리즘 조직 구조에서 이러한 시도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바깥에서 일어난 변화의 움직임이 기존의 것들을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기존 산업의 판을 파괴한다면 혁신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안이든 밖이든 기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저널리즘은 신문과 방송 중심으로 인식되어 뉴미디어는 저널리즘이 아니라고 인식되기도 한다. 그런 구조와 인식 하에서 저널리즘의 판을 바꿔내는 혁신이 일어날 수 있을지는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 어쩌면 저널리즘의 혁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이 아닌 것에서부터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 신문과 방송에서 시작된 전달형태의 저널리즘은 이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점점 상호작용하는 인터랙션 형태로 바뀌고 있다. 혁신은 기존 산업의 잠식과 함께 시작되기도 한다. 우리가 꿈꾸는 저널리즘의 혁신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의 한계를 깨는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모양으로든 기대된다. 변화든, 파괴든, 혁신이든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source=http://www.newsnext.socsci.uva.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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